한국이 근대국가로서 미완성인 이유
한국사회는 근대국가로서는 여전히 미완성이다. 근대국가란 대중의 정치의식, 공공적 가치체계, 사회규범 등이 전통적인 가치나 종교가 아닌 어떤 보편적인 근대이념에 의해 형성, 진화, 발전하는 국가이다. 한국은 아직 이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갈 길이 조금 남아 있다는 말이다.
그간 한국에는 구공동체윤리, 전통 유교에서 유래한 사회규범, 외래 종교의 규범이 사회적 규범으로 깔려있는 가운데 공적영역에서는 반공주의, 민족주의 정서가 지배해 왔다. 박정희시대 개발독재의 영향으로 연고주의/집단주의/군사주의적 문화도 약화되고는 있으나 여전히 남아 있다. 특히 지방으로 내려가면 심하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민주화의 성공으로 민주주의 제도가 요청하는 규범도 점차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1987년 이후 민주주의의 승리가 정치적 갈등해소, 인권의 신장, 정치권력의 사권력화방지(->부패, 정경유착, 반칙의 감소)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것이 공론의 장의 활성화, 사회통합에 기여할 겨를도 없이 1997년 이후 (신)자유주의라는 극단적인 자본의 윤리규범이 요란하게, 그리고 이상하게 왜곡된 형태로 수입되어 지금까지 지배적인 이념으로 군림해 왔다. 적나라한 약육강식의 무윤리, 돈과 효율을 극단적으로 숭배하는 사상이다.
<근대적 이념>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자유주의를 중심으로 정의할 수 있다. 자유주의는 잘 알려져 있듯이 개인의 재권리(신분, 성별, 인종 등에 의한 차별금지,인권의 존중, 개인의 자율과 책임원칙), (형식적)자유, 평등의 이념에 근거하여 사회를 조직하려는 이념이면서 동시에 사유재산과 (자유계약에 기초한)시장을 기반으로 이윤을 추구하는 사기업의 영업의 자유를 중시하는 이념이다. 이것은 자본주의라는 근대 경제체제를 떠받치는 이념인 것이다. 정치적으로 <보수주의 이념>은 자유주의를 적극 수용하면서 전통적 가치(구공동체, 가족, 전통종교)를 옹오하자는 <보수적 공화주의>의 경향을 띠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리하여 이 이념은 공공의 영역과 사적 영역의 구분을 당연시하며 국가권력은 공적영역에서 자본이 원하는 최대한의 사유재산권의 확장과 시장에서의 영업의 자유를 옹호하는 한편, 사적영역에서 전통적(보수적) 가치가 창달되도록 정책을 취하는 경향이 있다.
한편 <진보주의 이념>은 자유주의를 비판하면서 과거의 가치있는 유물이 아니라 미래가치, 미래공동체(가족이 아닌 사회차원의 차원높은 공동체, 전통종교가 아닌 무신론적인 인간중심의 가치(각주*참조), 인류애, 이러한 일에 기여한 사람에 대한 존중과 찬양, 그와 관련된 명예)를 옹호하고 추구한다. 말하자면 <진보적 공화주의>라고 말할 수 있다. 여기서는 공적영역과 사적영역의 엄격한 구분을 거부하는 경향이 있다. 이 구분은 자본이 원하는 것이지 미래공동체의 형성에는 장애가 되기 때문이다. 진보적 공화주의에는 사회민주주의, 사회주의 등 다양한 정치이념의 분화가 있을 수 있다.
양자 모두 민주주의를 공통의 원리로 받아들인다. 자신의 이념은 어디까지나 민주적 방식을 통해 추구하며, 권력의 획득은 대중에 대한 설득을 통해 다수의 지지를 확보하는 방식을 취한다. 그리고 공적영역에서는 어디까지나 근대이념이 각축을 벌이고 전통종교는 사적영역에 한정되며 사회적 가치체계, 사회규범에서는 거의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는다.
한국에서 아직 이러한 근대적 이념은 일반 대중의 의식에도, 정치인의 의식에도 자리집지 못하고 있다. 자유주의는 반공주의라고 인식됨으로써 인권억압, 자유부정이 되어 자유주의는 한국이라는 객지에서 이상한 이념으로 왜곡되었다. 최근에 와서 보편복지라는 말은 간간이 들어보았지만 그 정책의 이념적 근거인 사회민주주의, 사회적 연대(사회적 형제애) 같은 말은 생소하다.
한국의 지식인들은 외국에서 나온 보편이념, 보편지식의 수입에는 열심이지만 스스로 보편적 사고, 보편이념을 생산하는 것은 꿈도 꾸지 않는다. 민족주의는 방어적인 의식일 뿐 결코 보편의식이 아니다. 그러나 한국에는 젊은이들 사이에도 여전히 민족주의 의식이 강하게 남아 있다. 싸이가 하는 노래와 놀이는 세계보편적인 대중정서에 부합되는 놀라운 보편성을 가졌건만 싸이 자신은 노래가 세계적으로 히트하자 "대한민국 만세!"라고 외치면서 자신의 성과를 한국의 영광이라고 말한다. 이에 반해 아바(ABBA)의 노래는 전세계에 히트했지만 그들은 결코 "스웨덴 만세"라고 외치지 않았다,
공공의 영역에서 보편이념이 없으니 많은 사람들은 사적영역에서 전통종교의 보편이념에 메달리고 종교조직이 커지다 보니 선거에도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예를 들어 지역구에서 대형교회에 밉보이면 국회의원되기 아주 힘들어진다. 결정적으로 불리한 입장에 서게 된다.) 한국이 종교의 천국이 된 것은 우리의 근대국가의 미완성의 반사물이다. 그런데 이런 건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서양에도 근대화 초기에 다소 격렬한 신교분파, 그에 자극을 받은 가톨릭의 일부 격렬한 분파(예를들어 예수회)가 현재 우리나라와 유사한 힘을 행사한 경우가 많았는데 근대사회가 성숙하면서 조용해졌다. 그러니 이런 현상들을 가지고 한국에는 종교가 문제다, 고리타분한 유교윤리가 발목을 잡고 있다, 아직도 과격한 민족주의자들이 많다 등등 부차적인 것들을 핵심적인 장애로 파악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이런 문제점은 정당정치, 기타 참여민주주의 등 공적영역이 성숙하고 보편적인 근대이념이 자리를 잡으면 다 해결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론은 근대국가의 완성은 보수와 진보가 <보수적 공화주의>, <진보적 공화주의>로 올바로 서는 것이다. 이것이 아직 잘 되고 있지 않으니 한국은 근대국가로서는 아직 미완성이다. 한국은 해방이후 세계사적인 업적을 이룩했으나 아직 갈 길이 좀 남았다.
*(주) 기독교 사회주의, 해방신학처럼 종교도 얼마든지 진보적일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의 신교는 압도적으로 보수적인 것이 사실이다. 기복적이고 개인구원 추구하고, 자본의 영혼에 물들어 물질적 성과주의(신도가 몇명이고 교회가 얼마나 크고 등등에 집착)를 추구하고 성직자라고 세금도 내지 않는다. 그들의 논리에 따르면 모두가 성도이어야 하고 성직이 따로 없건만, 엄연히 하나의 직업적 기능에 불과하건만 현실에서는 목사가 예수 아들 쯤으로 간주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