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나드쇼류의 세상보기

한국의 봉건성이 문제라고 말하는 지식인을 향한 똥침

SongDam 2013. 7. 23. 11:08

요즈음은 목소리가 잦아들었지만 한국의 지식인 가운데는 현재 한국사회의 문제랄까 과제를 봉건성에서 찾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다. 그 가장 최신 사조가 진보적 자유주의를 현단계의 진보로 규정하려는, 잠깐 안철수와 손을 잡았다가 해어진 최장집교수 같은 지식인이 아닐까 한다. 나는 자유주의는 한국의 보수의 이념일지언정 진보의 이념일 수는 없다고 본다. 물론 진보적 자유주의는 봉건성 극복(기본권신장, 신분 등에 의한 일체의 차별금지, 사유재산과 시장의 옹호, 경제에 대한 국가개입 반대 등)만을 주장하지는 않고 미래가치도 일부 주장한다. 그러나 자유주의인 한에서는 봉건성 부정이 출발점이자 핵심이라고 본다. 그런데 이런 자유주의가 (그 구체적인 해석의 차이로 인해 <공동체 자유주의>가 됐건 <진보적 자유주의>가 됐건) 도대체 오늘 한국에서 무슨 진보란 말인가? 오늘은 이런 생각을 하는 분들에게 똥침을 한방 주려고 한다. 내가 너무 논리적인 논증의 방법을 취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번에는 좀 무식하게(그러니까 MB식으로) "당신, 직접 해봤어?" 이런 식으로 해보겠다.

 

난 사실 가끔 필요한 경우 "저는 20%는 영국 사람입니다"라고 말해 놓고 이야기를 시작하곤 한다. 언제? 외국에 대해 잘 아는 것처럼 말하는 사람을 기죽이기 위해 가끔 그렇게 한다. 뭐 과장되었나? 아니다. 근거를 대라면 나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영국 사람과 이야기 하면 그 사람들과 감정을 교류하면서 말하지. 그 사람들을 밑바닥에서 이해하니까. 그 사람들이 어떤 처지에서 어떤 기분으로 말하고 있는지를 이해하면서 말이지. 그래서 난 영어를 유창하게 말하지 못하지만 영어로 개그를 곧잘 하지."

 

무슨 특별한 이유는 없다. 오래 살면서 다양한 영국사람과 교류하다보니 그렇게 되었다.

 

왜 이 이야기를 장황하게 하느냐 하면 한국의 봉건성을 문제시하는 지식인에게 "영국을 내가 좀 아는데 만약 지금 한국사회가 봉건성 때문에 문제가 된다면 영국은 지금 반봉건 시민혁명이 일어나야겠네."라고 일침을 주기 위해서다. "착각은 그만"하라는 뜻이다. 

 

영국의 의회제도를 보면 우리의 국회에 해당하는 하원(House of Commons)이 있지만 상원(House of Lords)도 있다. 말 그대로 하원은 선출된 평민(Commons)의 대표(의원 MP=Member of Parliament)로 구성되지만 상원은 세습귀족이나 비세습 공훈귀족 가운데서 선출된다. 그 귀족이란 국민이 아니라 왕이 임명했다. 이 상황이 뭔가? 한국이 만약 이씨 왕조가 유지되고 입헌군주제이면서 양반 사대부로 구성된 상원과 일반 평민(그러니까 상놈)의 대표로 구성된 하원이 있다고 상상해보면 좀 이해가 좀 될 것이다. 봉건성에 대해 말하려면 이 정도는 되야 한다. 영국의 신문에는 항상 왕가와 여왕에 관한 보도가 나온다. 주요 국가행사에서는 수상이 주제하는 경우보다 여왕이 하는 경우가 더 많다.

 

영국의 언어는 지역적으로 다르기도 하지만 계층적으로 다르다. 귀족이나 상류층은 지역에 상관없이 귀족적인 표준언어를 쓴다. 우리가 사극에서 보면 조선시대 지체높은 양반이 쓰는 말투가 평민과는 다른 것과 꼭 같다.  

 

20-30년 전만해도 결혼할 때 우리 부모들은 신랑 또는 신부의 성씨가 뭐냐 본관이 뭐냐 엄청 따졌다. 고려시대 이조시대 잘나가는 지배층은 특정지역에 연고를 둔(본관을 가진) 몇몇 양반가문 출신이었다. 그래서 이것이 너무도 중요했다. 요즈음 부모가 그런 소리하면 자식들에게 조롱당한다.(전통윤리가 남아있는 시골에서는 더하다. 다수가 외국여성과 결혼하는 마당에 본관 따지는 일은 코메디가 된다.) 그러나 영국에는 요즈음도 귀족이 평민과 결혼하는 것이 뉴스가 된다.  

 

오랜 자본주의의 결과 돈있는 사람, 평민 세상이 되었지만 영국에서는 여전히 돈벌면 귀족 흉내 내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다. 내 딸이 다니던 영국중학교에도 귀족에 속하는 학생이 하나 있었는데 그 친구는 어려도 이름 불릴때 앞에 'Sir'라는 타이틀이 붙는 것을 보았다. 한국식으로 하면 "도련님" 하고 불러야지 그냥 "누구 누구야" 하면 안되는 식이다.

 

내가 방문교수로 옥스포드 대학에서 일년 채류하게 되었는데 학기 초 학장이 방문교수를 위해 그 분의 관사에서 간단한 파티를 배푼다고 하여 참석한 적이 있다. 학장은 귀족 출신이었고 이름 타이틀에 Lord가 붙는 분인데 나는 당시 그 분과 대화하면서 강한 인상을 받았다. "아, 조선의 선비가 환생한 것인가"라는 느낌이 들었다. 솔직이 부러웠다. 그 풍모와 관대함, 교양이 몸에 배인 제스처...

"이런 것이 전통사회의 지배층의 모습이구나. 우리 선조들도 제대로 배운 양반 선비는 틀림없이 그랬을 거야. 초상화를 보면 그런 느낌이 들었으니까 ."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과거 봉건사회가 <현재> 좋다는 것이 결코 아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역사와 현실을 혼동하면 안된다. 우리는 이런 양반귀족이 완전히 말살되었고 그 문화도 사라졌다는 사실을 말하고자 하는 것 뿐이다. 그리고 사실 과거는 지양, 극복하는 것이지 말살하는 것이어서는 안되는데 한국에서는 불행한 역사로 인해 과거가 지워졌다는 사실을 환기하고 싶은 것이다. 요즈음 정신차리고 복구를 하고 있으나 결론적으로 이래서는 안된다. 단절이 심하다. 우리의 과거에 대한 부정이 지나치다. (식민사관이나 그 반발로 나온 민족사관으로 본 조선이 아닌, 세계사적 관점에서 우리의 과거를 인식하고 제자리에 가져다 놓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겠다.) 

 

한편 영국의 경우 귀족은 의회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시스템에 녹아들어 현실적인 권력을 휘두르지는 않지만 여전히 문화적으로 헤게모니까지는 아니지만 상당정도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한국식으로 하자면 전통 유명 양반 가문은 약간 변형되기는 했지만 옛날 식으로 살고 그 높은 교양수준으로 사회적으로 일부 국민(특히 중산층)으로부터 존경을 받는다. 많은 일반평민이나 지식인으로부터는 거부를 받기는 하지만 말이다. 이 점은 사회의 기본 문화, 에티켓이 귀족문화에서 온 것을 보면 알 수 있다.(미국은 철저히 평민문화, '상놈문화'인 것을 생각해보라.)   

 

영국사람이 노인을 더 존중한다. 한국에서는 과거 연장자는 존경의 대상이었지만 지금은 천시의 대상이다. 동방예의지국을 거론하는 사람도 없다. 길에 나가보면 흰머리 한 사람 보기 힘들다. 왜? 노인을 천시하니 너나 없이 머리를 염색해서 그렇다.

 

한국은 자본주의를 가장 맹렬히 비판한 마르크스가 환생하면 깜짝 놀랄 정도로 자본주의적으로 굴러가고 있다. 이 점에서는 영국이 휠씬 더 비자본주의적이다. 영국에 가면 어딜가든지 200년, 300년 전 유적과 건물을 보존하고 전통에 대한 애착이 대단하다. 그야말로 정서적 보수주의가 피속에 흐르고 있다. 이런 가치를 지키려는 것이 영국의 보수당이다. 노동당은 이를 비판한다. 그러나 봉건성은 부차적이므로 보수당이 지지하는 자본평향적인 정책이 핵심 비판의 대상이지 보수당의 봉건성이 비판 대상이 아니다.  왜? 그것은 연속성으로서의 과거의 잔재이지만 미래를 위한 현실토대(그러니까 자산)이지  역사발전의 걸림돌은 아니기 때문이다.

 

자, 이제 결론을 내리자. 한국에 봉건성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영국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완전히 소멸되지는 않았지만 무슨 역사적 과제는 아닌 것이다.

 

한국사회 봉건성 운운하는 사람들에게 길게 이야기 하면 입만 아프므로  "당신, 살아봤어?" 이게 내 답이다.  

 

<첨언>

한국은 4.19혁명이 5.16군사구데타에 의해 바로 부정되고 박정희대통령이 중상주의적 산업화(개발독재)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전근대성이 극복되는 과정이 크게 약화된 바가 있다. 그래서 모든 중상주의의 일반적인 특징인 특혜구조(독재자에게 충성하는 집단이나 개인에게 특혜를 주는 것)가 오래 지속되었고 이에 따라 봉건성이 중상주의적 연고주의(=지연, 혈연, 학연을 중시하는 것)로 변질되어 아직도 일부 남아 있다.

 

영국에서는 산업화초기 중상주의가 16-18세기에 시행되었다. 그러니 벌써 200년도 더 전에 '개발독재'가 있었고 그 잔재는 명예혁명 등을 거치면서 서서히 약화되었다. 한국은 아직 박정희대통령 죽은지 30년 밖에 안되어 시간적으로 잔재가 남아 있는 것은 사실이다. 더구나 한국의 중상주의, 개발독재는 반공주의와 결합되어 자유=반공으로 치부되어 반공을 위해 자유와 기본권을 완전히 부정했다. 자유주의란 이름으로 자유를 부정한 꼴이다. 이러니 자유주의에 대한 국민의 관념이 왜곡되었다.

 

1970년 유신 이후의 독재는 그야말로 보편역사적 관점에서 어떤 정당성도 없었으며 완전히 오버한 것이었다. 이 점에서는 확실히 유신은 '귀태'였다.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존재 말이다. 그러나 개발독재 자체는 생략해도 될 역사단계는 아니었음을 유의해야 한다. 세계사적으로 그리고 논리적으로도 개발독재없는 산업화는 그 어디에도 없다. 그러므로 이 점에 관한 한 박정희대통령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존재(귀태)가 아니다. 태어났어야 할 존재였고 또 민주화 운동에 의해 극복되어야할 운명이었다. 물론 우리의 민주주의는 1987년에 정점에 달한 자랑스러운 민주화운동과정을 통해 성취되었다.

 

1987년 민주화는 박정희 개발독재 체제를 허물었고 이어 1998년부터 시작된 민주정부 10년은 민주주의를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것으로 정착시켰다. 한편 1998년 외환위기, 그리고 연이은 약 15년에 걸친 신자유주의의 공습은 과거 서양이 19세기 장기에 걸쳐 시행한 자유주의 정책기조를 단시일내에 시행하는 것을 의미했고 19세기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생산력이 발전된 자본주의 단계에서 시행된 급진 자유주의(=신자유주의)는 이 사회를, 죽은 칼 마르크스가 봐도 깜짝 놀랄 정도로 시장논리가 판을 치는 사회로 만들어 놓았다. 이제 진보는 이 격렬한 자본주의, 발가벗은 자본주의의 폐해와 모순에 집중하는 것이어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는 여전히 봉건성 운운하는 지식인이 있으니 어쩔 수 없이 똥침을 날리게 된다. 한국은 이제 봉건성의 과잉이 아니라 차라리 과소가 문제인 사회(그래서 혹시 전통가치를 진작시키려 한다면 그건 보수가 할 일이다), 봉건적 과거를 쓸어버린 후 이식된, 순수 100%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사회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영국과 비교해보면 이점이 극명하게 들어나는 것이다.

 

박근혜대통령측의 노무현대통령이나 친노에 대한 공격을 박정희=귀태하면서 받아치는 것은 박근혜=박정희로 몰아서 제2의 민주화를 해보겠다는 발상이다. 그러지 말고 박근혜의 경제민주화, 박근혜의 복지국가는 진보가 아니며 진보라면 이렇게 하겠다고 맞서야 마땅하다.(구태여 귀태라는 어려운 단어를 알아내어 자신의 지식을 자랑하고 싶었다면 일본의 아베총리한테 쓰면 좋았을 걸...) 

 

그런데 뜬금없이 또 옆에서 진보적 자유주의라는 나팔소리는 또 뭔가? 영 번지수가 잘못되었다. 한국에서는 사회민주주의가 현단계 진보이다!  사회 여기저기 음습한 구석이란 사회민주주의적 실천의 중심과제가 아니라 부수적 과제이며 사회민주주의 세력이 집권하면 단시일 내에. 거의 저절로 없어질 것들에 불과한 것이다.(사회민주주의는 일체의 차별을 부정하며, 기본권을 존중하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전제되어 있으며 보다 고차적으로 그것을 실현하려는 정치사상/운동, 자유주의가 주장하는 시장의 투명성을 넘어 국가의 투명성을 구현한 진정한 민주공화국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봉건성이나 박정희 중상주의 유산이란 진보의 정체성을 규정해야 할 핵심과제가 더 이상 아니다!

 

그건 그렇고 최근 진보신당->노동당, 진보정의당->정의당으로 당명을 바꾼 모양인데 이건 또 뭔가? 이 사람들도 혹시 종류가 다른 침이긴 하나 똥침 좀 맞아야 하나?  무슨 연유로 생소한 간판을 달게 되었는지 검토해볼 일이다.

 

<후기> 유럽 각국도 사정이 유사하여 19세기말 독일의 사회민주당이 출범하던 당시에 군주가 지배하는 봉건적 자본주의였고 오늘날 우리가 당연시하는 보통선거권도 없었다. 순수 입헌군주국도 못되었다. 스웨덴에서 보통선거권이 확보되어 모든 성인 남녀가 선거권을 확보한 것도 1918년이었다. 그렇다면 이 당시 진보는 자유민주주의여야만 했고 사회민주주의는 때 이른 것이었나?  자유주의자들과 민주주의의 확충에는 협력하지만 그 이상으로 나아가기 위한 투쟁을 전개한 것이 사회민주주의였다. 서로 개혁정당으로 경쟁하면서 한쪽은 자유주의적 노선에 따른 개혁, 다른 쪽은 진보노선에 따른 개혁을 내 걸고 경쟁했던 것이다. 그들에 비해 훨씬 고도화된 자본주의국가인 한국에서 자유주의가 진보라고 하는 것은 시대착오라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