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베 등 '사회적 에볼라바이러스'를 바라보는 올바른 시각
내가 시민운동에 관계하면서 만난 분들을 보면 과거 종교서적에 나오는 '천사'가 환생한 것임에 틀림없는 분들이 많다. 아! 당신들에게 축복이 있기를...그런 분들과 함께 한 나의 인생은 축복이요, 나로서는 과분한 영광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천사를 자극하여 분노케 하는 '악마'가 인터넷을 중심으로 대규모 대오를 형성하여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 이에 천사들이 여기 저기서 SNS를 통해 격분을 쏟아내니 매우 걱정이다. 에볼라바이러스 같은, 환생한 지옥의 마귀와도 같은 심성을 가진 사람들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오늘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
많은 수의 세월호 희생가족들은 세월호침몰로 희생된 자기자식과 같은 일을 당하는 젊은이가 더는 없도록 하기 위해, 이번 사건의 뿌리를 캐내어 단지 누구를 벌주라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제도나 비리/유착구조를 근절하고 돈만 아는 야만사회가 아니라 이 나라를 명실공히 인명과 인간이 우선하는 문명사회로 대전환 하는데 한 몸을 바칠 각오로 광화문에서 단식투쟁을 하고 있다. 또 이땅의 천사들이 그분들의 절규를 마냥 보고 있을 수 없어 동조 단식을 이어가고 있다. 아주 중요한 시점이다. 이런 사건을 계기로 사회가 바뀌지 않는다면 무슨 계기로 바뀔 것인가? 끝장을 봐야 한다는 생각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런데 이 장소에서 일부 집단이 집단 '폭식모임'을 하고 마치 자신들이 하는 일을 애국적인 일인양 떠 벌리고 단식하는 분들을 조롱했다고 한다. 아! 사랑의 전령, 프란체스코 교황이 이 땅에 팽배한 미움과 불신, 자기만 생각하는 욕심을 내려놓고 서로 화해하고 사랑하라고 당부에 당부를 하고 떠난지 며칠 지났단 말인가?
종교적 관점도 있겠으나 나는 오늘 진보정치를 염원하는 많은 양식있는 시민들이 취해야 할 태도가 어떠해야 할지 알아보려고 한다.
어떤 개인이 개인의 인생에서 수도 없이 억울한 일을 당하고, 인격적 모멸감을 느끼는 일을 계속 당하지만 그것을 어디에 호소할 길이 없다고 생각하면 어느날 분노충동을 억제하지 못하고 길에서 칼을 휘두르거나 차를 폭주하여 수십명을 죽이고 자기도 자살하는 일을 가끔씩 뉴스에 접한다. 그런데 만약 어떤 유사한 분노감정이 있는 사람들이 오늘날처럼 정보통신이 발달한 사회에서 어떤 사이트에 집결하고 그 원인을 알 수 없고 알고 싶지도 않지만 누가 손쉬운 희생양을 지목하면, "그래, 바로 그거야. 그 놈들 때문에 이 나라가 이 모양이고 내 인생도 꼬였어. 난 아무런 책임도 없는데 그 놈들 때문에"라고 하면서 단체로 최면을 상호상승적으로 건다. 이들의 머리에 있는 알 수 없는 상상적인 '적'은 현실의 얼토당토 않는 어떤 대응물로 구체화되며 그들은 이 구체적인 집단을 상상의 적과 동일시하면서(예를 들어 여성일반을 된장녀, 전라도사람을 홍어, 북한과 화해했으면 좋겠다는 사람을 종북이라고 부르면서) 희생양놀이를 반복한다. 사이버공간에서만 하다가 급기야 바깥으로 뛰어나온다.
이 점을 분명히 하자. 아무리 무자비한 에볼라 바이러스도 그 농도가 낮으면 병을 일으키지 못한다. 일정한 결집이 필요하다. 한편 인체가 저항력을 가지고 있으면 어떤 바이러스도 맥을 못춘다. 또는 적절한 방역망을 사회적으로 갖추면, 개인의 면역성은 형성되어 있지 않고 심지어 백신 조차 없는 경우에도 질병이 대규모 전염병으로 확산되지 않는다. 개인과 사회가 면역력을 가지고 있으면 사회 전체에는 어떤 영향도 줄 수 없다는 말이다.(더 크게 보면 인간을 포함하여 지구의 생명은 바이러스에서 시작했으며 지금도 끊임없이 새로운 바이러스가 출현하고 있다. 질병바이러스도 그 중 하나일 뿐이다. 지구의 약동하는 생명현상의 일부이다.) 마찬가지로 일베나 일부 일베에 친화적인 인사가 몇몇 있다고 해도 사회가 건강하면 문제가 될 수가 없으므로 무시하면 된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이 하는 행위에 계속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불필요하다. 오늘 내가 말하고자 하는 촛점은 불필요할 뿐 아니라 매우 위험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이런 자들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점검해봐야 하는 것이다. 그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자! 보자. 도대체 어떤 자들이 자본주의 사회가 종종 걸리는 질병(불안정화, 실업의 만연, 양극화, 인성의 황폐화)에 당면하여 진보정치를 통해 질병을 치유하고 사회를 인간이 서식할 수 있는 문명적 환경으로 만드는데 나서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어떤 희생양을 공격함으로써 사회를 공포로 몰아넣고 전체주의적 통제와 한바탕 광풍같은 폭력으로 사회를 장악하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파시즘적 정신으로 빠져드는가? 그들은 과거 독일에서 히틀러가 등장할 때도 그러했지만 성숙한 자본주의에서는 십중팔구 도시의 룸펜(건달), 경제적 지위 상 몰락했거나 불안정해지거나 불안정해질 것 같거나 등등의 이유로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앞에 공포를 느끼는 중산층과 그들의 자녀들이다. 자녀의 경우는 부모는 중산층인데 자기는 그렇게 될 수 없을 것 같아 가족이나 주위 사람으로부터 무시 당하고 있거나 무시당할까 두려운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우리 모두가 손을 잡을 때(연대할 때) 우리의 삶은 함께 자유롭고, 함께 행복해집니다"라고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말해도 결코 듣지 않는다. "과거 우리 부모는 남들이 다 못살 때도 이런 저런 행운으로, 이런 저런 노력으로 잘 살게 되었는데 함께 살자니 그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야" 이렇게 말한다. 파시즘이라는 파괴적 정념만이 이들에게 호소력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이 먼저 감염되며 사회 전체를 감염시키려고 틈을 노리는 '괴물'이 탄생하는 것이다.
사회민주주자가 할 일은 바로 멀쩡한 중산층, 건전한 중산층이 이런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도록 한층 더 노력하여 미리 이들을 사회민주주의의 지지자로 만드는 일이다. 현재 세계적으로도 한국 자본주의의 경우에도 미래를 알 수가 없다. 극도로 불안한 국면이다. 박근혜정부는 가계부채가 가처분소득 대비로 이미 위험수준을 넘어섰는데도 더 부채를 늘려 부동산경기를 살려보겠다고 나서고 있다. 몇년후 부채가 더욱 높아진 상황에서 우리 경제에 충격이 오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경제학을 평생한 나도 가늠할 수가 없다. 우리 사회가 분열하면 통제하기 어렵다. 이번에는 과거 1998년 외환위기 때처럼 결코 국민이 한마음이 되지 않을 것이다. "나가라고 해서 명퇴금 쫌 받고 나와 치킨 가게 차렸더니 망했고, 끝까지 버틴 사람들은 월급이 더 올라 잘 사는데 왜 내가 국가를 위해 협조해"라고 말할 것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걱정하고 준비해야 하는 것은 진보정치의 기반을 확장하는 것이다. 일베니 뭐니 하는 것은 그 자체로 문제가 되지 않으며 진보정치로 중산층을 끌어들이면 그들은 국지적 질병으로 끝나는 것이다. 따라서 나는 고결하고 식견이 있는 나의 천사들이 이런 바이러스에 분노 감정으로 에너지를 소모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결론내리는 것이다. 그들에 집중하여 감정을 소모하는 것은 바로 그들 병균이 바라는 바인 것이다. 우리가 할 일은 현실의 질병을 타개할 정치, 정책에 모든 에너지를 쏟은 일이다. 병균이 확산기미가 있을수록 더욱 이렇게 매진해야 한다. 그것이 병균을 이기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