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자의 덕목
지도자의 덕목
-무사심, 균형감각 그리고 지혜
지도자 잘못 만나면 온 국민이 고생하는 거 요즈음 뼈져리게 느끼는 사람 많을 것이다. 지도자의 덕목 가운데 핵심을 확인해보자. 첫째, 사심이 없어야 한다. 둘째, 균형감각이 있어야 한다.
사심이 없다함은 무엇인가? 이 질문은 사심이 있다는 것은 무슨 말이고 사심이 있는 자는 한국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자인가를 보면 알 수 있다. 사심의 핵심은 권력욕망이다. 보통사람도 권력 있으면 좋겠다고들 생각하지만 권력욕망에 <사로잡힌> 사람은 차원이 다르다. 동서고금에 권력욕망은 인간의 제2의 본성이라고 하지만 그 구체적인 내용은 때와 장소에 따라 달라진다. 오늘날 한국에서 기를 쓰고 권력을 획득하려는 자들의 내면을 보면 다수가 갑-을의 이분법으로 사회를 보며, 무슨 수를 쓰서라도 자신을 갑의 위치에 갖다 놓으려 한다. 이 자들은 세상에는 갑과 을이라는 두 부류의 집단만이 있다고 아주 굳게 믿는 사람들이다. 갑 아니면 을, <모> 아니면 <도>이지 개, 걸, 윷은 없다는 편협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다. 이어서 을이 되는 일은 죽음만큼 끔찍한 일로 보아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어떻게든 자신은 갑이 되어야 한다는, 오로지 그 한 생각으로 사는 자들이다.
이 자들은 겉으로보면 멀쩡하다. 아주 헌신적이며 자신을 희생하여 나라를 위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권력획득에 자신을 던지는 것일 뿐, 진정으로 좁은 자기를 넘어선 어떤 인류보편의 가치, 사회적 이익 그 자체를 위한 헌신이 아닌 것이다.
훌륭한 종교지도자의 경지에는 미치지 못한다해도 보편 가치에 헌신하는 정치인을 우리는 정치꾼(politician)이라고 하지 않고 정치지도자(statesman)이라고 부른다. 명실상부한 정치지도자가 바로 사심이 없는 부류에 속한다. 진정한 지도자란 자신의 이익을 고려함에 있어서도, 오직 인류적으로, 사회적으로 이익인 한에서 자신에게도 이익이라는, 그런 고차적인 의미에서만 자신의 이익을 고려한다. 그러므로 이 사람들은 대개 권력이란 오로지 봉사일 뿐이라고 생각하며, 권력을 아편처럼 탐닉하는데 여념이 없거나 '을'을 향해 권력을 휘두르는 쾌락에 빠지기는 커녕 그런 봉사의 기회가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책임자에게 부과되기 마련인 과중한 업무를 힘겨워하면서도 사명감 때문에 최선을 다해 수행할 뿐이다.
결국 무사심을 가진 사람은 높은 인격, 인간과 세계에 대한 깊은 이해의 경지에 도달한 사람을 말한다. 그런데 무사심과 높은 인격의 인과관계는 어떻게 되나? 높은 인격적 경지는 애당초 사심을 배제하려는 노력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무사심이 먼저이다. 왜? 사심없는 사람은 문제를 항상 자기 이익의 관점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전체 성원의 관점에서 보는 습관이 몸에 베어 있으므로 모든 인생의 순간에 자신을 넘어 인간과 세계에 대해 계속 깨달음을 얻고 인격이 끊임없이 발전하게 되어 있다. 결국 높은 인격은 무사심의 결과이지 지도자의 독립된 어떤 덕성이 아니다. 자기의 좁은 이익이 아니라 전체의 이익의 관점에서 생각하는 사람은 우선 종종 가족/친족의 이익을 돌보지 않는다고 불평을 듣는다. 마찬가지로 친구들로부터도 친구를 무조건 감싸지 않는다고 비판받는다. 또 "우선 내 배부터 채우고 보자"는 자기 내면의 속삭임에 저항하는 일도 쉽지 않다. 이처럼 좁은 자기를 단 한치라고 벗어나고 마침내 대인으로 되고, 더 나아가 군자에 이르는 길은 험난한 것이며 무사심을 가진 사람만이 감당할 수 있는 고난의 길이다.(무사심의 최고봉은 자신과 인류를 동일시하는 정도에 도달하는 예수, 부처님과 같은 경지를 말하는데 이것은 종교의 영역에 속하며 정치지도자에게 기대해서는 안된다.)
한편 균형 감각이란 무엇인가? 동양에서 중용의 정신을 가장 높이 사듯이 균형이 없으면 아무리 한쪽으로 지식이 높다해도 조직을 올바로 이끌수 없고, 어떤 상황이 닥치면 결국은 조직을 망가뜨릴 위험이 있다. 그래서 여러 요인과 입장을 사려깊게 살피고 지니치게 한 쪽으로 기울지 않는 것, 자니치게 한쪽 성향의 사람만 쓰지 않는 것 등등이 중요한 것이다.
물론 균형감각이 능사는 아니다. 저울 오른쪽에 1kg올 올리고 왼쪽에 1kg을 올리면 균형을 잡는다. 한편 10kg을 양쪽에 올려도 마찬가지로 저울은 균형을 잡는다. 마찬가지로 균형감각이 있어도 그 인식의 깊이가 얕은 사람이 있고 반대로 기왕이면 피상적으로 다가오는 선택지가 아니라 깊이 있고 획기적으로 새로운 것들 가운데서 선택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수준 높고 사려깊은 선택은 집단내부의 현실적인 갈등/이해대립의 원인을 원천적으로 제거하여 모두가 공감하는 것일 경우가 많다. 깊이는 어디서 오는가? 우선 앞에서 본 사심없음(공의에 충실함)에서 오며, 그런 지도자 옆에 모여드는 수많은 조직 지도자들의 집단적 지성에서 온다. 이렇게 볼 때 균형감각보다 중요한 일차적 덕목은 위에서 본 사심이 없는 정신, 높은 인격이다.
지도자의 사람 됨됨이가 왜 중요한가? 실무능력만 탁월하면 안되나? 이 문제를 살펴보자. 유유상종이라고 사심있는 지도자 옆에는 사심있는 자들만 바글대고 반대로 공의에 충만된 지도자옆에는 공의에 사는 사람이 몰려든다. 결코 권력자에게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공적 가치, 공적 목표 자체에 충실한 사람은, 자신의 손가락이 아니라 자신의 손가락이 가리키고 있는 <달>을 보는 자를 좋아하게 마련이다. 실제 일은 지도자가 임명한 조직책임자들의 집단적인 협동으로 이루어지므로 지도자의 실무 능력은 대부분의 경우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보다 중요한 것은 실무책임자들이 과연 공의에 충실한 자들인가 이며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임명권자인 지도자의 인격이다. 사람은 항상 유유상종할 수밖에 없다. 자신과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과는 일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도자가 사심이 넘치고 균형감각이 없다면 그 주위에는 그런 자들이 바글대기 마련이다. 결론적으로 누가 주위에 모이는가를 지도자의 인격이 결정하기 때문에 지도자의 자격은 그의 인간됨됨이 자체가 되는 것이다.
혹자는 지도자는 업무능력이 중요하지 인격이 무슨상관이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지도자가 너무 뛰어나 혼자 모든 일을 하고자 하는 것은 지도자의 일을 유능한 실무책임자의 일로 착각하는 사태를 초래하여 종종 조직성과를 나쁘게 할 수도 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지도자는 사심이 없고 균형감각을 갖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런데 혹자는 또 이렇게 반문할지 모른다.
"사심이 없고 균형감각이 있으면 뭐하냐. 오도가도 못하는 힘든 상황에서 대중이 헤매고 있을 때, 서로 자기이익에만 집착하여 함께 편히 갈 수 있는 대로가 바로 옆에 있건만 숲속 가시덤불에서 서로 아귀다툼을 하고 있는 어리석은 사람들을 대로로 인도할 지혜가 있어야지. 그러니까 지혜가 있는 지도자가 필요해."
지혜까지 갖춘 지도자는 난세에는 필히 영웅이 된다. 우리가 이 한반도에서 이순신 장군 이래 그런 지도자를 가져본지가 너무 오래되었다. <끝>